암 진단에서 조직병리학의 역할: 정확한 진단의 열쇠
암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 원인 1위에 해당하는 질환입니다.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한 경우도 많지만, 늦게 진단되면 치료가 어렵고 생존율도 급격히 낮아지죠.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고 빠른 암 진단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진단의 핵심에는 바로 조직병리학이 있습니다.
조직병리학은 암의 존재 여부뿐 아니라, 암의 종류, 악성도, 전이 여부, 예후, 치료 방향까지 결정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의료진의 치료 계획 대부분이 조직병리학적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암과의 싸움에서 첫 단추를 꿰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암 진단, 어디서부터 시작되나?
환자가 어떤 증상(예: 덩어리, 통증, 체중 감소 등)으로 병원을 찾으면, 의사는 먼저 영상검사(CT, MRI, 초음파 등)와 혈액검사를 통해 이상 소견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혹’이 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암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암인지 아닌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조직검사 결과, 즉 병리학적 진단입니다. 조직을 떼어내 현미경으로 관찰한 후에야 "이것은 암이다"라고 공식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암의 진단은 조직병리학 없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조직병리학이 제공하는 암 진단 정보
암의 진단은 단순히 ‘암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세부 정보를 포함해야 합니다. 병리학자는 현미경과 다양한 특수검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평가합니다:
✔ 1) 암의 유무
세포나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이 때 중요한 기준은 세포의 모양, 핵의 크기와 색, 조직 구조의 파괴 여부 등입니다.
✔ 2) 암의 종류
암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폐암만 해도 선암, 편평세포암, 소세포암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각각의 치료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조직학적 유형 분류가 필요합니다.
✔ 3) 암의 분화도 (Grade)
암세포가 원래 조직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보는 것으로, **고분화(잘 분화됨) ↔ 저분화(덜 분화됨)**으로 나뉩니다. 저분화일수록 예후가 나쁘고 공격적인 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4) 침습 여부
암이 주변 조직을 침범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특히 기저막 침범 여부는 암의 진단 기준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자궁경부의 경우, 기저막을 넘지 않은 경우는 **상피내암(CIN)**이라 하고, 넘은 경우 침윤암으로 분류합니다.
✔ 5) 절제 경계면 (Surgical margin)
암 수술 후 조직병리검사를 통해 절제 부위의 끝단(margin)에 암세포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양성 경계면(암 없음)이라면 수술이 완전했고, 암세포가 있다면 추가 치료나 재수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6) 림프절 전이
림프절을 함께 절제한 경우, 림프절 내 전이 여부를 확인합니다. 전이된 림프절의 수에 따라 암의 **병기(Stage)**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항암치료 여부도 달라집니다.
3. 실제 사례로 보는 조직병리학의 중요성
🧪 예시 1: 유방암
유방에 혹이 만져져서 생검을 진행한 A씨. 병리검사 결과, 침윤성 관암(Invasive ductal carcinoma)으로 진단되었고, 병리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 Grade 2 (중간 악성도)
- Estrogen receptor (ER) 양성
- HER2 음성
- Ki-67: 15%
이 정보는 단순한 ‘유방암’이라는 사실 외에도, 호르몬 수용체 상태, 증식 속도, 표적 치료 가능성 등을 제시합니다. 이에 따라 항호르몬 치료가 가능하며, HER2 억제제는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치료 계획이 수립됩니다.
🧪 예시 2: 대장암
대장 내시경 도중 용종이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시행한 B씨. 조직병리학적으로 고도 이형성(HGD, 고위험 선종)으로 나왔고, 일부 점막하 침윤 소견이 확인되어 조기 대장암으로 진단. 이에 따라 내시경적 절제가 아닌 수술적 절제가 권유되었고, 수술 후 림프절 전이 여부도 병리학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4. 암 진단을 위한 특수 검사: 면역조직화학(IHC)과 분자병리
조직병리학에서는 단순한 현미경 관찰 외에도 **면역조직화학염색(IHC)**과 분자진단을 통해 더 정밀한 분석이 가능합니다.
- IHC (Immunohistochemistry): 암세포가 특정 단백질을 발현하는지를 색으로 표시
예: 유방암 → ER, PR, HER2 / 폐암 → TTF-1, Napsin A 등 - 분자병리 검사: 유전자 변이 검사 (예: EGFR, KRAS, ALK 등)
치료제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폐암이나 위암에서는 표적 치료제 사용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검사입니다.
이런 검사들은 모두 병리과에서 조직 검체를 기반으로 수행됩니다. 즉, **정밀의학(Personalized Medicine)**의 시작점 또한 조직병리학인 셈입니다.
5. 병리학 보고서가 치료에 미치는 영향
병리학자가 내리는 진단은 단순한 병명 하나가 아닙니다. 보고서의 한 줄 한 줄이 항암치료, 수술 범위, 방사선 치료 여부, 추적 관찰 주기 등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다학제 진료(Tumor board)에서는 병리과 의사의 진단을 바탕으로 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등이 함께 논의하며 치료 방향을 결정합니다. 즉, 병리 진단은 모든 치료의 설계도가 되는 셈이죠.
6. 결론: 암 치료의 시작점은 조직병리학
암 진단과 치료는 ‘조직검사 없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조직병리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병리학자는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지만, 그가 내리는 한 줄의 진단은 환자의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디지털 병리학과 AI 기반 진단이 발전하면서, 조직병리학의 정확도와 효율성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해도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인간 병리학자의 경험과 통찰입니다.
조직병리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 ‘의학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